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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10-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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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어금호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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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의 글에 이어 반쪽에 걸쳐 조선일보사 소속 한기악(韓基岳, 1898~1941)의 「연구과를 두었으면」이란 짤막한 글이 실려 있고, 그 뒤로 당시 동아일보사 소속 이광수(李光洙, 1892~1950)의 「열세 가지를」이란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현대 표기로 고침) ◇ 천품(天稟) 예술(藝術) 기타 무슨 직업에나 천품이 있는 모양으로 신문기자에도 천품이 있지 아니한가 합니다. 신문기자가 될 천품이 어떠한 것이냐 하면 첫째는 신문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 둘째는 사건 진상(眞相)을 탐구하는 데 흥미를 가지는 것, 셋째는 보도욕(報道慾)이 있는 것 (어떤 이는 보도욕이 전혀 결여한 이가 있습니다), 넷째는 비평벽(批評癖)이 있는 것, 다섯째는 자기 개인의 일보다도 매양 국가 사회를 염두에 두는 성미 같은 것을 들 수가 있습니다. 기타 용모나 언어나 행동이 접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주게 생긴 것도 중요한 천품이라고 하겠습니다. ◇ 건강(健康) ◇ 신용(信用) ◇ 비밀(秘密) ◇ 문장(文章) 신문기자의 연장은 문장(文章)이니 문장술(文章術)에 한숙(?熟; 매우 익숙하고 능숙하다는 뜻)하지 아니하면 아니 됩니다. 평이(平易)하고, 정확(精確)하고, 간결(簡潔)하고, 생기(生氣) 있고, 그러고도 읽어서 유쾌한 문장을 쓰는 이는 신문기자로 팔분(八分)의 자격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글 못 쓰는 이는 신문기자 되기를 단념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믿습니다. ◇ 주, 색, 금(酒, 色, 金) 신문기자의 3대기(三大忌)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주(酒), 색(色), 금(金)입니다. 주도(酒徒), 호색자(好色者), 애금가(愛金家)는 반드시 신문을 망치는 기자가 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 색, 금을 따르는 이에게는 정의를 바랄 수 없고 오직 부패(腐敗)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 양심(良心) ▶ 허심(虛心)과 확고(確乎)한 주견(主見) 자기를 전혀 부인해 버릴 수 있는 재주, 자기는 사진의 건판(乾板), 백지(白紙), 유성기(留聲器), 비망록이 될 수 있는 재주(보도자로), 동시에 춘추(春秋)의 대의를 파지(把持)하여 추호도 가차 없는 주견(비평자로)은 신문기자의 요술적(妖術的) 방패의 양면(兩面)입니다. ◇ Something of Everything, Everything of Something. 이것은 신문기자의 지식 수양에 대한 서양인의 격언입니다. 모든 것을 조금씩은 알고, 어떤 것에 관해서 철저하게 잘 알아라, 환언(換言)하면 한 가지는 깊은 전문가이면서, 만사에 대해서는 넓은 상식(常識)을 가지란 말입니다. ▶ 조선어(朝鮮語)와 조선문(朝鮮文) (1) 조선어문전(朝鮮語文典), 문학(文學), 작문(作文) (2) 조선 역사, 조선 지리, 일본 역사, 일본 지리 (3) 조선 현대의 정치조직, 법제 개요, 단체 계통, 사상 계통, 중요 인물 (4) 정치학원론(政治學原論) (5) 경제학원론 (정통파, 맑스파) (6) 사회학, 사회심리학 (7) 동양사, 서양사, 세계지리, 문명사 (8) 인도, 중화민국, 러시아 사정 (9) 논리학, 수사법, 문장론 바다이야기예시종료 (10) 문학개론, 철학개론 (11) 신문지학(新聞紙學) (12) 신문 관계 법규 (13) 검열관의 심리(心理), 독자심리(讀者心理) 등 동아일보에 실린 이광수의 글 '열세 가지를' / 제공. 필자 그 밖의 기사들은 앞서 살핀 목차의 내용과 같다. 나머지 기사 중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해 보기로 한다. 우선 44쪽에 보면 편집부에서 작성한 「조선 최초의 기자시험」이란 기사가 눈에 띈다. ‘조선일보의 시험문제와 답안’이란 부제가 달려 있는데,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현대 표기로 고침) 한성순보(漢城旬報) 이후 그보다도 종래(從來) 《기별(寄別)》 이래 우리 조선에도 신문이 있은 지 오래되었으나, 완전한 신문의 형태를 갖추고 나온 지 벌써 40년에 가까운 터이나 그동안 파란(波瀾)도 많았고 왜곡도 적지 않았건만 종래 신문사 직원이나 기자를 채용하는 데 있어 특별한 수속(手續) 없이 간부나 선배들이 재분(才分) 있겠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채용해 왔습니다.?《매일신보(每日申報)》에서 간간이 1~2인 식의 시험채용(試驗採用)을 시험삼아 해본 일도 있으나 소수이었음? 그런데 금년에 조선일보사에서 처음 대규모로 ‘사원 시험 모집’을 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 동승자(同乘者) 간에 이와 같이 시험 채용을 하는 편이 낫겠느냐 종래대로 하는 편이 낫겠느냐 하여 의논(議論)이 불일(不一)한 경향도 있습니다만은 그것은 장차 목견(目見)할 것이므로 긴 말이 필요하지 않거니와 이 첫 시험은 시험 채용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궁금하게 여길 것이며, 더구나 우리 동직자(同職者)나 또는 기자를 희망하는 미래의 동직자도 다대(多大)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대할 줄 믿습니다. 대답은 다음 호에 싣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나) 종로 종각에 불이 났다면 무엇을 조사 보도할까?(기사문) (다) 아래의 단어를 간단히 해설하라. 데몬스트레이션, 조광조(趙光祖), 린드버그, 베르사유, 불복종운동(不服從運動), 모라토리엄, 정당방위(正當防衛), 리우데자네이루, 프리모, 리벨라, 청당운동(淸黨運動), 완전보장(完全保障), 상가 부선운동(婦選運動)1), 장중정(蔣中正), 코스모폴리탄, 아관파천(俄館播遷), 녹비(綠肥), 스팀슨, 스탈린 二. 사원 시험문제 (가) 나는 왜 신문사원이 되려는가?(논문) (나) 조선의 부(府)와 항구의 명칭 및 주요 무역품을 표시하라. (다) 조선 직물(織物) 수입액과 미곡(米穀) 수출액의 대략적인 액수는 얼마인가? (라) 다음의 용어를 간단히 해설하라. 데몬스트레이션, 산업합리화(産業合理化), 텔레비전, 하위체(荷爲替), 락도겐, 모라토리엄, 리지널, 천일염(天日鹽), 문익.(文益漸), 상업수형(商業手形), 토스안(案), 트러시트도가(都家), 스노덴, 경취(京取), 종방(鍾紡), 북포(北布), 합명회사(合名會社), 몰간, 크레디트, 맨체스터, 궤정(軌程), 항커우, 코스모폴리탄 야마토2게임다운로드 당시 시험 문제를 보면 단순한 글쓰기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시사 상식 전반에 걸쳐 매우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45쪽 같은 면의 하단에는 당시 신문사 내부의 분위기나 동료들의 소식을 전하는 가벼운 가십성 글들이 '단신(短信)' 형태로 실려 있다. 예컨대, 이런 내용이다. 이백(李白)이 기린비상(麒麟飛上)하니 강남풍월(江南風月)이 한다년(閑多年)이라 하더니 동아일보(東亞日報)가 정간(停刊)이 되고 보니 정족(鼎足)의 세를 형성하던 조선 언론계에서 적이 후리후리함을 느끼겠다.2) 요컨대, 그 무렵은 《동아일보》가 일제에 의해 정간되었던 때로, 당시 기자들이 강제로 붓을 꺾게 된 울분을 한글 공부나 개인적인 수양으로 달래던 시대적 아픔이 행간에 녹아 있다. 이후의 글까지 살펴보면 당시 지식인 계층의 언어 습관에 따라 국한문(國漢文) 혼용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동료 기자들을 ‘군(君)’이라고 부르면서 친근하면서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같은 인물평 기사는 가십 기사 형식으로 잡지 곳곳에 실려 있다. 이러한 가십 기사는 가볍게 언급되기에 적당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언론인의 근황을 흥미롭고 간단하게 전하는 형식이다. 예컨대, 창간호 48쪽에 나오는 것처럼 “중외일보 민우보(민태원)는 신혼을 하고 나더니 노신랑이 집안 가축에 늦부지런이 나서 화초를 심는다, 푸성귀를 간다 야단법석이다.”와 같은 내용이다. 또한, 46쪽부터는 당시 조선일보사 소속이었던 김기림(金起林, 1907~1970)의 「신문기자로서의 최초인상」이란 글이 실려 있는데, ‘써?날리즘의 비애(悲哀)와 희열(喜悅)’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여기서 ‘써?날리즘’는 당시 표기 ‘쩌?날리즘’ 곧 ‘저널리즘’의 오기(誤記)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조선일보사에 막 입사한 23세의 김기림이 신문기자가 된 소감을 밝히고 있는 글이다. 한편, 55쪽에는 「특별부록으로 신문강좌 설치」라는 공지와 56쪽에는 「본지(本紙) 차호(次號) 집필제씨(執筆諸氏)[명사무순(名社無順)]」이라는 공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주요 언론사(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외일보, 매일신보)의 다음 호 집필진 목록(본지 차호 필진) / 제공. 필자 75쪽부터는 5면에 걸쳐 발행인을 맡았던 중외일보사 임인식(林仁植)3)의 ‘진원지 없는 지진’이란 부제가 달린 「기사 대탈선 대혼선」이란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서 임인식은 당시 다사다난했던 종로경찰서를 담당하는 사회부 기자로서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중외일보사의 임인식의 글 '기사 대탈선 대혼선' / 제공. 필자 또, 신문평론을 표방한 전문잡지임에도 문예란을 두고 있어 이채롭다. 시 한 편과 소설 한 편이 실려 있는데, 먼저 82쪽에는 심훈(沈熏, 1901~1936)의 시 「필경(筆耕)」이 실려 있다. 『상록수』 등 소설 작품으로 유명한 심훈은 당시 《조선일보》 기자로 있었다. 작품 전문(全文)을 보면 다음과 같다.(현대 표기로 고침) 일제강。기 조선일보 등에 실렸던 심훈의 시조/한시 작품 '필경(筆耕)' / 제공. 필자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를 갈(耕)며 나간다 릴게임 바다이야기 고래 . 한 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의 쟁기(?)요 유일한 연장이다. 거친 산기슭에 한 이랑(畝)의 화전(火田)을 일구려면 돌뿌리와 나무 등걸에 호미 끝이 부러지듯이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몇 번이나 꺾였었든가? 그러나 파랗고 빨간 「잉크」는 정맥(靜脈)과 동맥(動脈)의 피! 최후의 일적(一滴)까지 종이 위에 그 피를 뿌릴 뿐이다. 비바람이 험하다고 역사의 바퀴가 역전(逆轉)할 것인가 마지막 심판(審判)날을 기약(期約)하는 우리의 정성(精誠)이 굽힐 것인가 동지(同志)여 우리는 퇴각(退却)을 모르는 전위(前衛)의 투사(前衛의 鬪士)다! 「박탈(剝奪)」 「아사(餓死)」 「음독(飮毒)」 「자살(自殺)」의 ● ● ● ● ● ●가 우리의 밥벌이냐 「아연활동(俄然活動)4)」 「검거(檢擧)」 「송국(送局)5)」 「판결언도(判決言渡)」 오년(五年)?십년(十年)의 스코어를 적는 것이 허구한 날의 직책(職責)이란 말이냐 창(槍) 끝같이 철필(鐵筆) 촉을 벼려 그 x x 속을 파헤치자 샅샅이 파헤쳐 온갖 x x을 백서(白書)에 폭로(暴露)하자! 스위치를 제쳤느냐 윤전기(輪轉機)가 돌아가느냐 맹수(猛獸)의 포효(咆哮)와 같은 굉음(轟音)과 함께 한 시간에도 몇만 장이나 박혀 돌리는 활자(活字)의 위력(威力)은, 민중(民衆)의 맥박(脈搏)을 이어주는 우리의 혈압(血壓)이다! 오오 붓을 잡은 자여 위대한 심장(偉大한 心臟)의 파수병(把守兵)이여! 여기서 제목 ‘필경(筆耕)’은 “붓으로 밭을 간다”는 뜻으로,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농사에 비유한 표현이다. 내용 중에 나오는 ‘검거’, ‘판결언도’, ‘폭로’ 등의 단어를 통해 당시 일제강.기 언론인들이 겪었던 탄압과 그에 굴하지 않는 저항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신문을 인쇄하는 윤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맹수의 포효에 비유하며, 신문이 민중의 맥박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83쪽부터 중외일보사 소속의 이종명(李鍾鳴)이 번역한 스페인 영화감독 프레스코 이바네스(Fernando Fresco Ibanez)의 작품 『시네마(CINEMA)의 노파(老婆)』를 싣고 있다. 90쪽의 맨 끝에 [미완(未完)]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연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간기면이 보인다. 연래(年來)에 숙제(宿題)로 몇몇이 이야기하여 오던 것을 이제야 겨우 제1보를 내딛게 된 것이 편집을 마쳐놓고 보니 그나마 미비(未備)한 것이 많아서 편집자 스스로도 불만이 많아 이것을 염치없이 어떻게 세상에 내놓겠느냐는 수괴지심(羞愧之心;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실행(實行)보다 말이 먼저 앞서는 폐풍(弊風)이 많을 터이므로 우리는 남들과 같이 먼저 떠들지 않고 과언중(寡言中)에 잡지부터 내어놓기로 하고 미리 떠드는 것을 피하였다. 특색이 있다면 이것이나 남들은 특색이라고 할까. 바다이야기무료 「신문평론(新聞評論)」 잡지라니까 혹은 건조무미(乾燥無味)한 직업지(職業誌)로 여기는 분도 없지 않으려니와 우리 동인(同人)들은 현대 신문이 각계급층(各階級層)에 모두 흡수(吸收)되는 것과 같이 이것도 만인(萬人)의 동무가 되어 신문인(新聞人)으로 하여금 독자의 심리를 이해하고 독자로 하여 신문인의 발표를 알리는 「기자와 독자」 사이의 친목기관이 되며 따라서 매개가 되고자 하는 터이다. 그래서 신문에 대한 신문기사도 싣거니와 취미(趣味)와 실익(實益)이 함께 있는 기사를 더 많이 실어보려자 애를 썼다. 그러나 워낙 짧은 시간에 시급히 내놓느라고 예상보다 미흡한 。이 많은 것은 독자의 깊은 양해가 있기만 바란다. 다음 호부터는 좀 더 침착한 태도로 내용을 충실히 하여 일반의 기대를 저버리지[고원(孤願)하지] 않도록 힘쓰겠다. 끝으로 ‘장비군령(張飛軍令)’같이 적당한 시간도 드리지 못한 채 성화(星火) 같은 독촉을 받아가며 원고(原稿)를 써주신 본호(本號) 집필자 제씨(諸氏)에게 뒤늦게야 미안한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간기(刊記) 정보를 보면 책값은 1부에 당시 화폐로 25전(우표값 2전 별도)이고 6개월분은 1원 50전(우송료 무료), 1년분은 3원(우송료 무료)이었다. 발행일은 소화(昭和) 5년, 곧 1930년 7월 9일(7월 7일 인쇄)이었으며, 편집 겸 발행인 임인식(林仁植), 인쇄인 정경덕(鄭敬德), 인쇄소는 기독교창문사(서울 종로구 견지동 123), 발행소는 철필사(鐵筆社)로 ‘서울 종로구 청진동 133’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 그밖에 경성 총판매소는 서울 견지동에 있었던 ‘이문당(以文堂)’이었다. 《철필(鐵筆)》 제1권 제1호의 간기면 / 제공. 필자 한편, 창간호 곳곳에 보이는 창간 축하 광고도 흥미로웠다. 당시 어떤 기업과 단체들이 언론과 밀착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맨 앞쪽부터 게재된 순서대로 명칭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덕영상.(德永商店), 미나미자동차부(自動車部), 다이야몬드잉크, 화신상회(和信商會), 경성포목상조합(京城布木商組合), 동아자동차강습소(東亞自動車講習所), 중외일보(中外日報), 조선일보(朝鮮日報), 단성사(團成社), 흥일사(興一社), 조선극장(朝鮮劇場), 문화여관(文化旅館), 서울양복.(洋服店), 선일지물주식회사(鮮一紙物株式會社), 이문당(以文堂) 세계일주동화집(世界一周童話集), 대창양화。(大昌洋靴店) 《철필》이 남긴 숭고한 뜻을 계승하자 이 잡지는 1930년 7월 창간호에 이어 3호까지는 매월 정기적으로 발행되다가 4호는 해를 넘겨 나왔다. 잡지의 성격은 표지에 명기한 대로 ‘신문평론 전문잡지’이며, 발행 목적은 창간호 편집후기에서 “독자로 하여금 신문인의 발표를 알리는 기자 독자 간의 친목기관이 되며 따라서 매개가 되고자 하는 터”라고 밝힌 바와 같이 신문계의 사정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창간호 71쪽에 나오는 사고(社告)를 통해 “본지는 조선의 신문인 다시 말하면 조선의 ‘저널리스트’ 제군을 위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신문계 종사자들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잡지를 이끌었던 편집진은 누구였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폐간될 때까지 발행소 ‘철필사’, 편집인 겸 발행인 ‘임인식(林仁植)’만 드러나 있을 뿐 편집진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발행인 임인식은 당시 《중외일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사건 하지만 그 이상의 인물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철필》 제4호 54쪽에 ‘복면기자’라는 필명으로 실린 「3대 신문사 인재 순례기?사회부」라는 기사를 보면 임인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임인식 씨. 동사(同社 편집국에서는 제일 나이 어린 기자이다. 씨는 황해도 백천 출생인 만큼 서도(西道) 사람의 특유한 정서적 기분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사(事)에 임하여서도 매우 열(熱)이 있다. 일찍이 배재고보를 거치어 중국 강소성 남통주에 있는 농과대학 예과를 필하고 돌아와 동사에 입사하여 4년 동안 사회부에 근무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서 《철필》의 책임자였던 임인식은 당시 《중외일보》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고, 같은 신문사 기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당시는 민간신문 3사(《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를 중심으로 언론계에는 쟁쟁한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동아일보》에는 이광수·주요한·현진건, 《조선일보》에는 김기림·안재홍·염상섭·유광열·박팔양, 《중외일보》에는 민태원·김형원·신경순 등이 재직 중이었다. 이처럼 경륜과 사회적 명망이 높은 기자들이 언론계에 다수 포진하고 있었음에도 가장 어린 나이에다가 언론계 경력도 얼마 되지 않은 임인식이 《철필》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기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 발행인이나 편집인은 신문지법 26조 규정6)에 의해 집필자와 함께 사법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비해 1920년 중반 이후부터 비교적 낮은 직급의 인물을 발행인이나 편집인으로 등록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요컨대, 당시 일제에 의한 엄혹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언론계 경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임인식을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내세움으로써 일본 총독부의 기사 검열 과정에서 문제가 될 경우 책임 소재를 완화하려는 발행 전략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무명의 《철필》 편집진들이 신문평론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느라 노심초사했을 장면이 떠올라 뭉클하다. 여전히 언론은 우리 사회의 감시자이자 민주주의의 파수꾼임을 믿기에 《철필》 발행의 숭고한 뜻이 더욱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의 언론인들이야말로 그 뜻을 잘 계승하여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기를 바란다. 김기태 '처음책방' 설립자 참고 문헌 1) 부선운동(婦選運動)은 근대 일본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해 벌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뜻한다. ‘부선’은 부인참정권(婦人參政權)의 약칭으로, 1925년 남자 보통선거법이 통과될 당시 “보선(普選, 보통선거) 없이는 부선(婦選, 부인선거) 없다”라는 구호에서 유래했다. 2) 당시 주요 신문 중 하나였던 《동아일보》가 무기한 정간 처분을 받자, 언론계의 한 축이 빠진 사태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4) 일제강。기 문학작품이나 당시 신문기사 등에서 주로 발견되는 표현으로, ‘갑자기 활동을 시작함’, ‘느닷없이 움직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5) 주로 직장이나 부서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전근, 퇴직, 혹은 영전하여 떠날 때 이를 환송하는 모임이나 행위를 뜻한다. 6) 사회의 질서 또는 풍속을 교란시키는 사항을 기재한 경우에는 발행인, 편집인을 10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환 이상 300환 이하 벌금에 처한다. 4년 동안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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