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출장으로 홍콩을 찾았다. 일정이 끝나니 한밤이었지만 홍콩의 밤거리를 둘러보고 싶어 걷기로 했다.
몇 분쯤 지났을까. 노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몸집의 두 배는 돼 보이는 종이상자 더미를 손수레에 싣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화려한 야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홍콩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라서 그랬을까. 노인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레를 미는 할머니를 한 명 더 만났다.
홍콩의 폐지 수집인은 적지 않았다. 2023년 실시된 조사에선 2,791~3,456명으로 추정됐다. 고령 여성이 많아 '종이상자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응답자 701명 가운데 60~79세가 74.7%, 여성이 81.4%였다.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일해도 버는 돈은 많지 않다. 폐지를 비롯한 재활용품 판매 중위값은 월 750홍콩달러(약 13만 원)였다. 폐지 가격 하락에 대한 호소도 있었다. 지난 5월 CNN이 만난 70대 노인은 '폐지 판매 가격이 ㎏당 0.6홍콩달러(약 103원)에서 0.3홍콩달러(약 52원)로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수입이 적어도 거리로 나서는 이유가 있었다
바다이야기게임장
. 10명 중 6명은 생계를 위해 폐지를 모은다고 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 홍콩은 2024년 1분기 기준 65세 이상 주민 58만 명 이상이 빈곤 상태에 있다고 추정했다.
홍콩의 모습은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지방자치단체 조사를 통해 확인한 폐지 수집 노인은 1만4,831명, 평균 연령은 78.1세였다. 2023년 1,035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대면 조사에서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6일, 하루 평균 5.4시간 폐지를 모아 월평균 15만9,000원을 번다고 했다. 서울시 조사 결과, 폐지 수집 노인 2,411명 중 75%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폐지를 줍고 있었다.
여행지의 생경함이 늘 보던 장면을 낯설게 만들었다. 폐지 수집 노인의 모습은 노년층 상당수가 처한 빈곤을 거리 위에 드러낸다. 손수레에는 온종일 몸을 움직여도 생계를 지탱할 만큼의 대가를 얻지 못하는 노동의 현실도 실려 있다.
일부 지자체는 폐지 수집 노인들을 배려한 정책을 내놓았다.
황금성하는법
폐지 판매대금에 보조금을 더해주거나 폐지 판매 기준 금액에 못 미치면 차액을 보전해주는 식이다. 이런 노력은 세심하지만 단편적이다. 노인 빈곤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발표된 미국 인구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5%(2020년 기준)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매우 높았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빈곤층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늘고 있다는 .이다. 9월 2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빈곤 구조의 변화와 정책적 시사。'(이주미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빈곤층 내 75세 이상 비중은 2016년 19.7%에서 2024년 29.0%로 늘었다. 65세 이상으로 넓히면 35.4%에서 47.6%로 늘었다. 보고서는 "빈곤층 연령 구조가 고령층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라고 썼다.
한국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올해 4만 달러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노인의 비중이 커지는 나라라면, 성장의 결과는 노년의 삶으로도 가늠해야 한다. 부자 나라에서 생계를 위해 종이상자를 줍는 노인의 모습이 흔한 풍경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폐지 수집 노인이 한 고물상에서 폐지 무게를 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돼 보이는 종이상